왜인등대습격사건

소안도 항일해방운동의 뿌리는 갑오년(1984)의 동학혁명에서 시작 된다.

1987년 병자수호조약이후 일본은 일본 상선의 남해항로를 돕기 위해 당사도에 등대를 설치하였는데,
바로 이 등대를 1909년 1월 이준화 외 5명이 습격, 일본인 4명을 타살하고 시설물을 파괴한 의거를 감행하였던 사건이다.
당사도 등대사건은 이후 민중항쟁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소안의 교육과 정신이 항일과 구국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198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동학의 접주 나성대가 동학군을 이끌고 소안도에 들어와 군사훈련을 시켰다. 이 때 소안도 출신 이준화, 이순보, 이강락 등이 동학군에 합류했으며, 소안도 주민들은 동학들의 식량을 조달했다.

그러나 혁명을 실패하고 김옥균을 살해했던 홍종우가 소안 상황을 밀고하면서 동학군과 관군이 충돌하였다. 이 때 이순보, 이강락 등 몇몇 주민들이 청산도로 끌려가 관군의 손에 총살 당했고, 이순천, 이준화는 동학군과 함께 도피하였다.

당사도 등대사건은 이후 민중항쟁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소안의 교육과 정신이 항일과 구국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건이다.